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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등교, 주체가 누구인가

희래 2014. 8. 25. 23:27

경기도 지역 초중고 9시 등교 찬반 논란이 거센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일단 정책이 충분한 조사에 근거를 두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기로는 의정부의 모 중학생들이 이를 요구했고, 경기도 교육감이 이를 수용하며 9시 등교를 시행했다. 그렇다고 저게 대다수 학생들의 애로사항이 맞을까? 경기도 교육청이 확실한 통계조사 후에 내린 결론이라면 충분히 당위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실 정책이라 부르기도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면 찬성측의 주장은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이에 반대하는 측의 주장은 여러가지다. 맞벌이라 아이의 등교시간이 늦어지면 등교시키기 더 어렵다, 오히려 더 늦게자고 늦게 일어난다, 늦잠자서 더 밥을 안 먹을 것이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공부를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등등. 이 주장들은 대부분 논리적으로는 그다지 단단하지 않은 것들이라 공식적인 설득의 근거로 제시하기는 좀 어렵다.


이 다툼을 지켜보는 난 좀 슬펐다.

9시 등교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학부모가 아니다. 아이들이다. 9시 등교를 해야하는 주체는 학생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찬/반 주장의 주체들은 학부모나, 교육관련 위원들이다. 뉴스의 인터뷰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글도 어른들이 주체가 되어있다. 실제로 9시 등교를 함으로써 못 먹던 아침밥을 먹을 수 있게 되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어서 편해지는 아이가 있을것이다. 하다못해 숨쉴틈도 없는 빽빽한 하루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는 게 그렇게 반가울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만큼 학교가 늦게끝나므로 이후 스케쥴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미뤄지게 되고, 결국 늦잠을 자게 되서 오히려 더 불편해지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이 정책이 실제로 편할지 불편할지는, 당사자인 아이들이 제일 잘 안다. 표현 그대로 아이들이 '온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툭 까놓고 말해 어떤 결정이 내려져도 어른들의 삶의 질에는 큰 변화가 없다. 실제로 잘못된 결정이 내려졌을때 명확하게 고통받게 되는 것은 아이들이다. 당연히 아이들의 목소리를 중점적으로 듣고 최대한 아이들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쪽으로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일인데 아이들은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모두가 어른의 입장에서 이것이 더 좋다, 나쁘다를 말하며 싸운다.

이건 아니다. 좋다 나쁘다, 편하다 불편하다는 어른들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몫이여야 한다.


이게 바로 탁상공론 아닌가? 정작 대상이 되는 사람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원하는 대로 일처리를 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정치인의 탁상공론을 욕하지만, 스스로는 자식의 의사는 존중하지 않은 결정을 내린다. 이를 보고자란 아이가 커서 정치인이 되어 탁상공론을 내놓더라도, 이 정치인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게 당연한 것인줄 알고 배워왔는데.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상공론의 피해자로 자라서, 가해자가 된다. 슬픈 일이다.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내기 위하여, 아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충분히 들어야 한다. 찬성을 하더라도 아이들이 찬성해야 하고, 반대를 하더라도 아이들이 반대를 해야한다. 결정은 그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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